예술교육이 아이를 바꾼다 (과정중심, 융합수업, 리버럴아츠)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교육과정에서 예술은 영어, 수학, 과학과 동등한 여섯 번째 필수 과목 그룹입니다. 저는 처음 이 사실을 접했을 때 솔직히 놀랐습니다. 무용을 가르치는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도 예술이 그렇게 제도적으로 대우받는 나라가 있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과정중심 교육이 아이를 어떻게 바꾸는가
저는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에게 무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경험 안에서 분명하게 확인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기술보다 과정이 먼저입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수업은 연기, 무용, 노래를 함께 배우고 최종적으로 뮤지컬 공연을 올리는 융합수업입니다. 융합수업이란 단일 예술 장르가 아닌 복수의 예술 장르를 하나의 커리큘럼 안에서 통합적으로 배우는 방식을 말합니다. 처음에는 저도 결과물보다 과정만 중시하는 수업으로 설계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가르쳐보니 결과물이 없으면 아이들이 자신이 무엇을 해냈는지 실감하지 못하더라고요. 공연이라는 결과물이 생겼을 때 비로소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과정을 철저히 밟되, 그 끝에 공연이라는 성취감을 경험하게 하는 방식으로 전환했습니다.
이게 단순한 무대 경험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무용은 혼자 완성할 수 없습니다. 연기도, 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은 연습 과정에서 자기 박자가 아닌 옆 사람의 박자에 맞춰야 하고, 본인이 실수를 했을 때 팀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을 몸으로 배웁니다. 협력과 배려가 추상적인 덕목이 아니라 당장 오늘 연습에서 필요한 기술이 되는 순간이 생깁니다.
IB 교육과정에서도 예술 교과목 평가에서 핵심적으로 보는 것이 기술 숙련도만이 아닙니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질문을 던졌고, 어떤 자료를 참고했으며, 스스로 그 결과를 어떻게 평가했는지를 함께 봅니다. 이 방식은 제가 수업 안에서 경험적으로 터득해 온 방향과 정확히 일치합니다(출처: IBO 공식 사이트).
융합수업 안에서 아이들이 배우는 것
제가 직접 가르쳐보면서 가장 예상 밖이었던 부분은 아이들의 꿈 이야기였습니다. 수업 첫날 아이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아이돌, 유튜버라는 답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잘못된 꿈이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그 꿈의 내용이 대부분 화려한 겉모습, 그리고 얼마나 버냐는 이야기로만 채워져 있다는 게 제 경험상 걱정되는 지점이었습니다.

아이돌이 되기 위해 연습생이 감내하는 것들, 유튜버가 하나의 콘텐츠를 위해 기획하고 실패하고 다시 만드는 과정을 아이들은 잘 모릅니다. 결과물만 소비하다 보니 그 뒤에 쌓인 시간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수업 안에서 이 부분을 자연스럽게 건드리려고 합니다. 뮤지컬 한 편을 올리기까지 얼마나 많이 틀리고 수정하고 다시 해야 하는지를 직접 경험하면, 아이들 스스로가 그 과정의 무게를 알게 됩니다.
소마틱(somatic) 접근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소마틱이란 몸의 움직임과 감각을 통해 자기 인식과 감정을 이해하는 교육 방법론을 뜻합니다. 제 수업에서 무용이 단순한 동작 교육에 그치지 않는 이유도 이것입니다. 아이들이 몸을 통해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을 반복하면서,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씩 알아가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 부딪히면서 다름을 인정하는 경험도 이 과정에서 나옵니다.
리버럴 아츠(Liberal Arts) 교육 철학에서도 예술이 빠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리버럴 아츠란 인문학, 자연과학, 예술, 수학 등을 통합적으로 배워 자유로운 사고와 판단력을 기르는 교육 방식을 말합니다. 넓은 기초 위에 깊은 전문성을 쌓는다는 개념인데, 저는 무용 수업에서 아이들이 표현력, 집중력, 협동심을 함께 기르는 과정을 보면서 이 철학이 실제로 작동하는 장면을 매일 목격하고 있습니다.
리버럴아츠 관점에서 본 예술교육의 실질적 효과
예술교육이 학업이나 사회생활에 왜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분명히 있습니다. "예체능은 취미이고, 진짜 실력은 따로 있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는 그 의견이 틀렸다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아이들이 예술 활동을 통해 실질적으로 기르는 역량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자기 표현력: 감정을 몸과 말과 소리로 바깥으로 꺼내는 능력
- 협업 능력: 내 타이밍이 아닌 팀의 타이밍에 맞추는 훈련
- 실패 내성: 수십 번 틀려도 다시 하는 경험의 반복
- 자기 인식: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에너지를 내고 있는지 파악하는 능력
- 성취감과 자신감: 결과물이 있을 때 비로소 생기는 "내가 해냈다"는 감각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꿈의 오케스트라, 꿈의 극단, 꿈의 무용단 등 학교 밖에서도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전국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미 제도는 갖춰져 있습니다. 문제는 여전히 많은 보호자들이 예술 활동을 "공부 다 하고 나서"의 부수적인 것으로 여긴다는 점입니다.
저는 공연을 마친 아이들의 얼굴을 매번 직접 봅니다. 그 얼굴이 제가 이 수업을 계속하는 이유입니다. 기술이 늘었다는 표정이 아닙니다. 뭔가 스스로 해냈다는 표정입니다. 이 경험이 그 아이의 안에 남아서 나중에 어떤 일을 할 때도 작동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예술교육을 공부와 별개의 것으로 보는 시각이 바뀌려면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과정을 온전히 경험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 차이를 매일 현장에서 보고 있기 때문에, 저는 결과보다 과정을 먼저 설계하는 수업을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자녀가 어떤 예술 활동에라도 한 번 참여할 기회가 생긴다면, 잘하는 지보다 무엇을 느꼈는지를 먼저 물어봐 주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