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정답을 가르치지 않는 부모’가 되는 연습
문제를 알려주지 않고 질문을 남기는 교육 스토리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아이가 클수록 고민되는 문제를 한께 공유하고자 한다.
아이를 키우며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는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라는 문장이다. 부모로서 아이가 헤매지 않길 바라는 마음, 시행착오 없이 빠르게 정답에 도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AI가 정답을 순식간에 찾아주는 시대에, 과연 부모의 역할은 여전히 ‘정답 전달자’여야 할까.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아이에게 정답을 알려주는 일이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묻는 질문에 답을 주는 순간, 생각은 멈추고 따라 하기만 남는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문제를 해결해주는 부모가 아니라, 질문을 남기는 부모가 되기로 했다.
정답을 알려주면 빨라지지만, 질문을 남기면 깊어진다
아이와 퍼즐을 맞추던 어느 날이었다. 아이는 조각이 맞지 않는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예전 같았으면 손을 뻗어 “이건 여기야”라고 알려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다르게 말했다.
“이 조각은 왜 안 맞는 것 같아?”
“지금 보고 있는 그림에서 힌트가 있을까?”
아이는 잠시 멈췄다가 조각을 뒤집고, 방향을 바꾸고, 다시 살폈다. 시간이 더 걸렸다. 답답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아이는 스스로 맞췄고, 그 순간의 표정은 단순한 ‘성공’이 아니라 이해했다는 확신에 가까웠다.
정답을 주면 해결은 빠르다. 하지만 질문을 남기면 아이는 사고의 과정을 통과한다. 이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해진다.
AI 시대에 ‘정답 능력’은 더 이상 희소하지 않다
AI는 이미 숙제도 풀고, 글도 쓰고, 문제도 분석한다. 아이가 크면 클수록 “정답을 아는 능력”은 점점 가치가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중요해지는 것은 무엇을 묻느냐, 어떤 방향으로 생각하느냐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엄마는 답을 알고 있을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어.”
이 말은 부모로서 권위를 내려놓는 말이 아니라, 함께 생각하자는 초대에 가깝다.
아이에게 정답을 주지 않기 시작하면서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질문이 늘어났다. 그리고 질문의 방향이 달라졌다. “이게 맞아?”에서 “이렇게 하면 왜 안 될까?”로 바뀌었다.
질문을 남기는 부모가 되기 위해 바꾼 세 가지 태도
첫째, 침묵을 견디는 연습
아이가 고민할 때 바로 끼어들지 않는다. 잠깐의 침묵은 실패가 아니라 사고의 시간이다.
둘째, 평가하지 않는 질문 사용하기
“그건 틀렸어” 대신
“다른 방법도 있을까?”를 사용한다.
셋째, 과정에만 반응하기
결과보다 “어떻게 생각했어?”를 먼저 묻는다. 아이는 결과가 아닌 사고 자체가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질문은 아이에게 ‘생각할 권리’를 준다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은 방치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관심과 인내가 필요하다. 아이가 스스로 길을 찾도록 옆에서 기다리는 일은, 대신 해결해 주는 것보다 훨씬 에너지가 든다.

하지만 이 과정 속에서 아이는 배운다.
누군가 대신 생각해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모른다고 해서 실패가 아니라는 것,
생각은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미래를 대비하는 가장 현실적인 교육
미래를 대비한 교육이라고 하면 거창한 기술이나 선행학습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가장 현실적인 대비는 이것이었다. 정답을 주지 않는 용기, 그리고 질문을 남기는 태도.
AI는 점점 똑똑해지겠지만, 아이가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힘은 누군가 대신 만들어줄 수 없다. 그 힘은 가정에서, 일상 속 대화에서, 부모의 한 문장 선택에서 자라난다.
오늘 아이가 질문을 던졌다면, 답을 주기 전에 한 번만 더 생각해보자.
“이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건 정답일까, 질문일까?”
그 선택이 아이의 미래 사고력을 결정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