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공부 습관이 이렇게 중요한 건지 몰랐습니다. 학원 하나 안 보내고 있으면서 막연히 '나중에 때가 되면 하겠지'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직접 가르쳐보니 습관 없이 중학교에 올라온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제 눈으로 보게 됐습니다.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공부 습관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입니다
제 친구 아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 할 것 같습니다. 친구는 딸이 어릴 때부터 학습에 거부감 없이 잘 따라와서 걱정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에 올라가자마자 외모에 신경 쓰고 새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그 좋던 학습 습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고요. 저는 그 말을 듣는데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저도 아이에게 뭔가를 만들어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춘기 한 번에 다 무너질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여기서 중요한 게 하나 있습니다. 아이의 집중력이 갑자기 떨어지거나 공부를 멀리한다면, 단순히 공부 방법의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저는 학원과 학교 양쪽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한 가지를 알게 됐습니다. 지금 아이가 어떤 마음 상태인지, 어떤 고민을 안고 있는지를 먼저 파악하지 않으면 어떤 학습 전략도 효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표면적인 공부법은 그냥 허공에 뜹니다.
국내 초등학생의 학습 부진 원인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학습 동기 저하와 정서적 불안정이 학력 격차를 만드는 주요 변수로 꼽힙니다(출처: 한국교육개발원). 이걸 보면서 저는 '아, 공부가 안 되는 건 공부 문제가 아닐 수 있겠구나'라고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읽기·쓰기가 공부의 뼈대인 이유
초등 교육 현장에서 29년을 보낸 교감 선생님이 한 사례를 공유한 적 있는데, 수학 시험에서 항상 꼴찌였던 6학년 아이가 어느 순간 100점을 받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비결은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독서와 쓰기, 이 두 가지였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이게 특수한 케이스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아이들을 가르쳐보니 이건 특수한 케이스가 아니었습니다. 읽고 쓰는 힘은 공부의 '기초'라는 말보다 '뼈대'라는 표현이 정확합니다. 기초는 없어도 어떻게든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지만, 뼈대가 없으면 그 위에 아무것도 쌓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문해력(文解力)이란 글을 읽고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한글을 읽을 줄 안다고 해서 자동으로 문해력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저희 아이도 문제를 집중해서 읽지 않아 틀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빨리 하고 싶은 마음에 대충 훑고 넘어가는 거죠. 아이 스스로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문제를 풀기 전에 천천히 읽는 시간을 따로 주고, 다 맞힐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독해력(讀解力)이란 글의 전체 맥락을 파악하고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이게 문해력과 비슷해 보이지만 다릅니다. 단어 하나를 아는 것과 그 단어가 문장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파악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독해력을 키우는 데는 소리 내어 읽기가 효과적입니다. 소리 내서 읽으면 문자 언어가 음성으로 변환되고, 그 과정에서 아이가 내용을 다시 처리하게 됩니다. 사회나 과학처럼 학습 용어가 낯선 과목에서는 특히 효과가 큽니다.
쓰기도 단순한 일기 쓰기 이상의 개념으로 봐야 합니다. 독서가 인풋(input), 즉 외부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면, 쓰기는 아웃풋(output)입니다. 여기서 아웃풋이란 배운 것을 자기 언어로 표현하고 정리하는 능력입니다. 읽기만 잔뜩 하고 쓰기를 건너뛰면 인풋과 아웃풋의 균형이 깨집니다. 아이가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표현력이 자라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 이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교육 연구 결과도 뒷받침합니다(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읽기·쓰기 역량이 높은 학생일수록 전 교과 성취도가 고르게 높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집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전 방법

제가 직접 써보면서 효과를 느낀 방법들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독서 시간은 최소 20분 이상 확보한다. 아침 10분 독서는 책에 겨우 몰입할 만하면 끝납니다.
- 책 수준은 '다섯 손가락 테스트'로 확인한다. 한 페이지에서 모르는 단어가 5개 이상이면 너무 어려운 책, 1~2개면 수준에 맞는 책입니다.
- 수업 중 느낌표(아! 하는 순간)와 물음표(궁금한 것)를 공책에 기록하는 습관을 들인다.
- 일기는 하루 전체를 쓰지 않고 가장 인상 깊은 한 장면만 쓴다.
- 일기는 한 번에 완성하려 하지 않고, 두세 번 고쳐 쓰면서 다듬는다.
- 플래너에 오늘 할 것을 적고, 했으면 스티커를 붙이는 방식으로 시각화한다.
여기서 플래너 쓰기(planner writing)란 하루 또는 한 주의 학습 계획을 미리 세우고 실행 여부를 기록하는 습관을 말합니다. 중고등학교 최상위권 학생들 중 플래너를 쓰지 않는 아이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초등에서부터 이 습관을 들이면 중학교에서 따로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아이가 수학 문제를 풀 때 초를 세는 놀이를 같이 합니다. 덧셈 뺄셈처럼 빠르게 풀 수 있는 문제를 5초 안에 맞히면 아이가 엄청 좋아합니다. 일부러 조금 늦게 숫자를 세줘서 아이가 더 신나게 하도록 유도하기도 합니다. 유치하다 싶을 수 있는데, 이 작은 방법 하나가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으로 바꿔줍니다.
결국 아이가 공부에 재미를 붙이려면 좋아하는 과목에서 성취감을 먼저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모든 과목을 동시에 끌어올리려는 것보다, 아이가 빛나는 한 과목을 먼저 키워주면 그 자신감이 다른 과목으로도 자연스럽게 번집니다. 제 경험상 이건 틀림없습니다.
습관은 한번 자리 잡으면 부모가 굳이 챙기지 않아도 아이 스스로 움직이게 됩니다. 반대로 습관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방법을 알아도 매일 다시 설득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저녁, 일기 한 장면만 같이 써보는 것, 그것으로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