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중심 사회에서의 역행 교육
아이를 키우며 가장 무심코 자주 쓰게 되는 말은 “빨리”라는 단어다.
빨리 준비해, 빨리 끝내, 빨리 움직여.
이 말은 훈육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회의 속도를 아이에게 그대로 옮겨놓은 표현에 가깝다.
나는 어느 날 아이에게 “빨리”를 너무 자주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말이 아이를 재촉하는 동시에, 아이의 리듬을 부정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한 가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아이에게 일부러 ‘천천히 해도 괜찮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었다.
천천히 하게 두면 뒤처질까

가장 먼저 떠오른 걱정은 이것이었다.
느리면 뒤처지지 않을까.
남들은 다 앞서가는데, 우리 아이만 제자리에 머무는 건 아닐까.
실제로 아이는 처음에 더 느려졌다.
준비 시간이 길어졌고,
마무리도 깔끔하지 않았다.
그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래서 빨리를 말해야 하는 거야’라고 되뇌었다.
하지만 끝까지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아이가 자기 속도로 움직였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지켜봤다.
속도를 내려놓자 집중의 질이 달라졌다
의외의 변화는 집중에서 나타났다.
빨리 끝내야 할 때 아이는
계속 주변을 살피며 산만해졌다.
하지만 천천히 해도 된다는 전제가 생기자
한 가지에 더 오래 머무르기 시작했다.
완성은 늦었지만,
중간에 포기하는 일은 줄어들었다.
아이 스스로 다시 고치고,
다시 시도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속도가 줄어들자
사고의 깊이는 오히려 깊어졌다.
‘느림’은 게으름과 다르다
천천히 하는 아이를 보면
주변에서는 종종 걱정한다.
게으른 건 아닐까, 의지가 부족한 건 아닐까.
하지만 가까이서 지켜보니
느림은 게으름과 전혀 달랐다.
아이의 느림은
자기 기준을 확인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이렇게 하면 괜찮을까?”
“조금 더 해보고 싶어.”
이 말들은
서두를 때는 나오지 않던 말들이었다.
속도를 낮추자
아이의 내적 대화가 들리기 시작했다.
부모의 조급함을 내려놓는 연습
아이에게 천천히를 허락하는 일은
사실 부모에게 더 어려웠다.
기다리는 동안
부모의 불안이 먼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이러다 타이밍을 놓치면 어떡하지?’
‘지금이 중요한 시기인데…’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건 속도일까, 방향일까?
방향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속도만 올리면
아이는 더 자주 길을 잃는다.
천천히 간 아이는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아이의 느림은 정체가 아니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아이는 자기 리듬을 찾은 뒤
오히려 안정적으로 나아갔다.
빨리 하라고 재촉하지 않아도
스스로 시작했고,
중간에 그만두지 않았다.
이 변화는 눈에 띄지 않지만,
지속력이 있었다.
속도 중심 사회에서 필요한 역행 능력
미래 사회는 더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AI는 속도를 경쟁력으로 만들 것이다.
그럴수록 인간에게 중요한 능력은
속도를 조절할 줄 아는 힘이다.
언제 빨라야 하고,
언제 느려도 되는지를 아는 사람은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아이에게 천천히를 허락한 것은
단순히 여유를 준 것이 아니라,
자기 리듬을 지킬 권리를 준 것이었다.
천천히 자란 기준은 오래 남는다
빨리 만든 성과는
빨리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천천히 쌓은 기준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아이의 속도는
여전히 평균보다 느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속도는
아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안다.
그 선택이야말로
미래를 대비하는 가장 조용한 준비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