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막아주지 않았을 때 아이에게 남은 것
아이를 키우며 가장 견디기 어려운 순간은
아이의 선택이 틀릴 것임을 부모가 이미 알고 있을 때다.
그 선택이 가져올 결과가 눈앞에 보일 때,
부모는 거의 본능적으로 개입한다.
“그건 아닌 것 같아.”
“이렇게 하면 더 좋을 것 같아.”
그 말 한마디로
실패는 사라지고, 상황은 정리된다.
하지만 그 순간 함께 사라지는 것이 있다.
아이의 경험이다.
실패를 막아주는 일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실패를 막아주는 부모는
무책임하지 않다.
오히려 책임감이 강하다.
아이를 아끼기 때문에,
덜 다치게 하고 싶기 때문에
미리 방향을 틀어준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렇게 해왔다.
아이의 시행착오를
부모의 경험으로 덮어버리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의 말에 이런 표현이 늘어났다.
“어차피 엄마가 말해줄 거잖아.”
“엄마가 정해줘.”
그 말은 편했지만,
나는 불편했다.
아이의 선택이 점점
부모의 결정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패를 허락하기로 한 날
어느 날 아이는
분명히 비효율적인 선택을 했다.
더 쉬운 방법이 있었고,
이미 여러 번 비슷한 상황을 겪어본 나는
결과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아이의 선택을 들은 순간
입 안에서 말이 맴돌았다.
“그건 아닌 것 같아.”
하지만 그날은
말을 삼켰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그렇게 하면 어떤 일이 생길 것 같아?”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잘 모르겠어. 그래도 해보고 싶어.”라고 말했다.
그 순간,
부모로서 가장 불안한 선택을 했다.
막지 않기로.
실패는 생각보다 조용히 왔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아이의 선택은 잘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실패는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고,
크게 좌절하지도 않았다.
아이는 잠시 멈췄다가
이렇게 말했다.
“이 방법은 아닌 것 같아.”
그 말에는
변명도, 억울함도 없었다.
그저 경험을 정리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순간
위로도, 교훈도 덧붙이지 않았다.
실패를 아이의 것으로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패를 겪은 아이는 선택을 다르게 했다
그날 이후
아이의 선택은 달라졌다.
조심스러워졌다는 뜻이 아니다.
생각이 붙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건 지난번이랑 비슷해.”
“이렇게 하면 또 안 될 수도 있어.”
이 말은
부모가 가르쳐준 교훈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만든 기준이었다.
실패를 한 번 통과한 아이는
선택을 가볍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태도는
어떤 설명보다 강력했다.
실패는 자존감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많은 부모가 걱정한다.
실패를 허락하면
아이의 자존감이 상처받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내가 본 실패는
자존감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오히려 실패를 자기 경험으로 소화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이의 태도는 더 단단해졌다.
실패를 대신 막아주면
아이는 좌절하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동시에
‘내 선택이 만든 결과’를 경험하지 못한다.
그 공백은
나중에 더 큰 불안으로 돌아온다.
부모의 역할은 실패를 제거하는 사람이 아니다
실패를 허락한 이후
나는 부모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부모는
아이의 길을 미리 정리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의 선택 옆에
조용히 서 있는 사람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실패를
교정하지 않고,
평가하지 않고,
다만 지켜보는 일.
이 역할은
생각보다 많은 인내를 요구한다.
하지만 그 인내 덕분에
아이의 성장은
부모의 말이 아니라
아이의 경험 위에 쌓인다.
실패를 허락한 집에서 남은 것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실패를 허락했던 그 선택이
아이에게 남긴 것은
성공이 아니었다.
대신 남은 것은
이 감각이었다.
“틀릴 수 있어.”
“다시 선택할 수 있어.”
“한 번 실패했다고 끝은 아니야.”
이 감각은
누가 가르쳐서 생기지 않는다.
실패를 실제로 통과해본 아이만이 갖는다.
미래를 대비하는 실패의 가치
AI 시대에는
실패조차도
최적화되고 관리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환경일수록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실패를 견디고
다시 선택할 수 있는 힘이다.
실패를 허락한 성장은
느리고, 불안하고,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그 실패가
아이를 약하게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오히려
자기 선택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게 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