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예측 교육의 함정
아이를 키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미래 이야기를 하게 된다.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요즘은 이런 직업이 뜬대.”
이 질문들은 아이의 꿈을 키워주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대화가
아이의 가능성을 넓히기보다
보이지 않는 틀을 먼저 씌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를 의도적으로 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에게 미래 직업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는 것.

직업 예측은 언제나 어른의 기준이다
미래 직업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어른의 관점에서 시작된다.
지금 뜨는 산업, 사라질 직업,
AI가 대체하지 못할 분야.
이 모든 정보는 그 자체로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야기가 아이의 경험보다 먼저 들어온다는 점이다.
아이의 세계가 아직 충분히 넓어지기도 전에
“이건 전망이 없어”,
“이건 미래에 유리해”라는 말이 먼저 깔리면
아이는 선택하기 전에 이미 분류부터 배우게 된다.
“이건 나중에 도움이 안 될 것 같아”
어느 날 아이가 무언가에 흥미를 보이다가
이렇게 말했다.
“이건 나중에 도움이 안 될 것 같아.”
그 말은 아이의 생각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어디선가 들은 어른의 언어에 가까웠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직업 예측 교육은 아이에게 너무 이른 ‘효율의 기준’을 준다는 것을.
아이는 아직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어디까지 해볼 수 있는지도
충분히 경험해보지 않았다.
그런데도 ‘쓸모’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면
호기심은 빠르게 줄어든다.
직업을 말하지 않자, 활동의 의미가 달라졌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의 활동을 직업과 연결하지 않기로 했다.
그림을 그리면
“이게 나중에 뭐가 될 수 있을까”라고 묻지 않았고,
무언가를 만들면
“이런 쪽으로 가면 좋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물었다.
“이건 어떤 점이 재미있어?”
“이걸 하면서 뭐가 제일 좋았어?”
질문이 바뀌자
아이의 대답도 달라졌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과 감각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미래를 좁히지 않기 위한 선택
직업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의 미래를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미래는 예측할수록
점점 좁아진다.
지금 기준으로 유망하다고 여겨지는 직업이
아이의 성인이 될 무렵에도
그 자리에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무엇이 될지’보다
‘어떻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자랄지’를 더 중요하게 두기로 했다.
직업은 결과이고, 사고는 기반이다
아이에게 직업을 먼저 말해주면
아이는 그 직업에 맞는 모습이 되려고 애쓴다.
하지만 사고의 기반이 충분하지 않으면
그 모습은 오래가지 않는다.
반대로
사고의 기반이 단단한 아이는
어떤 환경에서도
자기 역할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
문제를 정의하는 힘,
방향을 바꾸는 유연함,
새로운 것을 배우는 태도.
이 능력들은
특정 직업을 목표로 해서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직업 이야기를 잠시 미뤄둘 때
조용히 자라난다.
“나중에 생각해도 돼”
이제 아이가 물으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건 나중에 생각해도 돼.”
이 말은 무책임한 회피가 아니다.
지금은 아직 탐색 중이라는 사실을 존중하는 태도다.
아이에게는
미래를 결정해야 할 시간이 아니라,
미래를 열어두어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
미래를 대비하는 가장 느린 방법
아이에게 미래 직업 이야기를 일부러 하지 않는 선택은
느리고,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서
아이는 자신이 무엇에 반응하는 사람인지
조금씩 알아간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직업은 나중에 붙여도 되지만,
사고의 방향은 지금 만들어지기 때문이다.